대흥사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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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h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대흥사 전각

대흥사 전각

독특한 전각구성

대흥사는 다른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절을 가로 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북원과 남쪽의 남원으로 당우를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선열당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정묵당, 세심당, 정진당, 백설당, 심검당 그리고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또 남원의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전, 의중당, 강례재, 명의재, 보련각 그리고 최근에 증 개축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고 있다.

남원의 구역에 위치한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을 다시 세분하면 북원과 남원, 그리고 표충사, 대광명전 네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은 후대에 조성된 별원(別院)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둔사의 옛 모습은 침계루 앞 계곡을 중심으로 남원, 북원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흥사 전각배치도

대웅보전

대흥사의 중심법전으로 대흥사 가람 북원에 자리한다. 심진교와 침계루, 대웅보전이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며, 여기서 직교하여 좌측에 대향각과 우측에 백설당이 중정을 형성하며 배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건물이다. 건물은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여 평방을 얹었다.
공포는 다포로 내삼출목(內三出目)ㆍ외이출목(外二出目)을 주간마다 2구씩 공간포를 놓았으며, 건물 안팎으로 화려한 조각솜씨를 뽐내듯 처마 아래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포의 형상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외부로 뻗은 쇠서 위에 연봉을 조각하였으며, 내부는 모양을 판형으로 만들어 운봉형(雲峰形)으로 단장하였다.

건물 전면은 주간 모두 2분합의 두툼한 빗살문을 달고 하부 2단을 구획하여 화려하게 수장된 안상문양과 태극문을 궁방에 치장하였다. 측면과 배면에는 중인방까지 막돌을 쌓아, 상부에 팔상도와 법당을 수호하는 사천왕도를 벽화로 장엄하고 있다.

특히 이 건물의 외부장엄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어칸 상부에 자리한 2행 종서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이다.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로 추사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현재 이 글은 백설당에 걸린 추사의 ‘무량수각’ 편액과 함께 대흥사 명필로 손꼽혀 장성 백양사 및 승주 송광사에서 그 글을 모각할 만큼 뛰어난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건물 계단석 소맷돌에는 두 눈을 부릅뜬 사자머리 한 쌍이 주목을 끄는데, 구한말 일본 석공이 조각한 것으로 귀신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 축대 앞에는 괘불을 고정한 용두를 조각하여 불전을 수호하는 벽사의 뜻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 상부에 이단층의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그 내부에 반자와 운궁형 닫집을 형성한 화려한 불전으로, 대들보 사이에 용두와 칠보문양을 단장하고 있다. 대들보는 자연목을 그대로 이용한 투박한 수법이지만, 대들보 위를 넘어서 뽑아낸 충량의 용두는 불전의 신성함을 더하며 다소 과장된 장엄의 극치를 보여준다.

후불벽 앞에 가설된 수미단 상부에는 목조 삼세불을 비롯하여 육봉선사(六峯禪師)가 화주한 삼불회도가 헌괘되어 있으며, 중앙 불단 좌우로 20세기 초 대흥사 불화 조성에 참여한 명응환감(明應幻鑑)ㆍ예운상규(禮芸尙奎)와 그의 권속들이 그린 삼장탱ㆍ신중탱ㆍ칠성탱ㆍ감로탱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 대웅보전에는 영단을 비롯하여 수미단 우측에 근래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천수천안관음탱이 모셔져 있으며, 천장 상부에 서수를 탄 동자들이 비천하는 목조각이 장엄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침계루에 걸린 ‘대웅전중창상량문(大雄殿重創上梁文)’과 ‘대웅전중건기(大雄殿重建記)’를 통해 1667년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화려한 치장과 치목수법,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1899년 북원 일곽의 화재 이후 육봉선사의 발원으로 중건된 것으로 보여진다.

  • 대웅보전 외경
  • 대웅보전 내 삼불상
  • 대웅보전 천정 연등
  • 대웅보전 벽화
  • 대웅보전 편액
  • 대웅보전 천정모습

천불전

천불전 기도 영험 유래 (千佛殿 祈禱 靈驗 由來)

이 곳 千佛殿에 봉안된 천불상은 1813년(순조 13년)에 완호윤우선사(玩湖尹佑禪師)께서 千佛殿을 중건하시고 和順 쌍봉사 화승(畵僧) 풍계대사(楓溪大師)의 총지휘로 경주 불석산에 나오는 옥석(玉石)으로 10명의 대둔사(현대흥사)스님들께서 직접 6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완성한 千佛로서 그 조각 자체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교함과 신비스러움이 더한 천 분의 부처님입니다. 千佛殿 중앙 삼존불은 목불로써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좌우보처에는 문수. 보현 보살상을 모셨으며
千佛이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거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으로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며 경주에서 조성된 千佛을 2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순조 17년(1817년) 정축(丁丑) 11월 18일 경주 장진포를 출발하여 울산을 거쳐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향하여 항해 도중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에 표착하였다. 이 배에는 768여구의 옥불을 싣고 있었다.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 했다. 그러나 이 불상들이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현감 꿈에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 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현몽하자 현감은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확인한 후 그 다음 해 7월14일 대둔사(대흥사)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옥불을 돌려보내기 아쉬워 불상 밑면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일본표해록』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千佛殿에 봉안된 옥 불상은 근세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처음에는 가사(袈裟: 부처님과 스님들께서 입는 옷을 칭함)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경상도 신도님 꿈에 여러 차례 가사 불사를 해줄 것을 현몽 하여 서둘러서 가사를 만들어 입혀 드리게 되었다. 千佛께서 입으셨던 가사는 가사불사에 동참한 신도들 가정에 소장하게 되면 온갖 근심과 걱정 장애가 없어지고 지극 정성으로 염원하는 마음속의 소원이 꼭 성취되는 영험이 있어 그 이후 유명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千佛 기도 도량입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여러분들께서도 千佛殿 기도를 통한 영험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千佛殿 懸板 (천불전 현판, 조선후기 원교 이광사 친필)
千佛殿 柱聯 (1917年 오인당 안규동 전서 古 예서체 친필)
(世尊坐道場) 세존이 앉으신 이 도량에
(淸淨大光明) 청정한 대광명 빛나니
(比如千日出) 마치 천 개의 해가 떠서
(照耀大千界) 대천세계를 밝게 비추이듯 하네
千佛殿으로 들어서는 門인 가허루(駕虛樓, 懸板 글씨는 全州出身 蒼岩 李三晩先生 親筆 ) 문지방은 U자 형으로 마치 소의 멍에와 같이 생겼으며, 千佛殿 앞산의 悟道재 능선과 千佛殿 뒷산의 悟心재 능선으로 연결되어 이어지는 허공 가운데 다리를 의미하며, 또한 인간세상(此岸)과 부처님의 세계(彼岸)로 연결시키는 교량 역할을 이르는 뜻이다.

[천불전(千佛殿)_보물 제1807호 ]

천불전은 높이 쌓은 석축단(石築壇) 위에 낮은 기단(基壇)에 세운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자연석(自然石) 기초(基礎) 위에 일부 괴목(槐木)으로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보이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작(多包作)을 꾸몄다.
건물 앞면에는 궁창판에 안상(眼象)을 하였고 정교(精巧)한 국화무늬(菊花紋)·연화무늬(蓮華紋)의 꽃살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중앙칸은 3짝, 좌우협칸(左右夾間)은 2짝이다.

내부 중앙에 목조(木造)의 본존불(本尊佛)을 봉안(奉安)하였으며 주위에 옥석(玉石)으로 조각한 천(千)의 작은 불상을 배열(配列)한 것이 특이(特異)하다. 기록에는 순조(純祖) 11년(1811) 불탄 것을 동(同) 13년(1813)에 중건(重建)하였다고 한다. 순조 11년(1811)에 불에 탄 뒤 2년 뒤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의 중앙에는 목조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6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천 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있다.

석조천불상(石造千佛像)

1813년에 중건된 천불전에는 중앙에 목조석가삼존상과 그 주위로 1,000구의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계단식 불단 위에 봉안된 천불은 천불전 중창주인 완호(玩虎)대사의 제자인 풍계(楓溪)대사의 발원으로 경주지역 옥석으로 조성되었으며, 현재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불에 전하는 전설은 1821년 풍계대사가 쓴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등장한다.
풍계대사의 지휘로 천불전에 봉안할 천불이 6년에 걸쳐 완성된 후, 몇 척의 배에다 싣고 바닷길을 통해 대흥사로 향하던 중 풍계대사가 탄 배가 울산진(蔚山津)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표류한 배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에 닿았는데, 배에 실린 천불을 본 일본인들이 이를 봉안하기 위해 급히 절을 지으려 하자 불상들이 그들의 꿈에 나타나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의 불상으로서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현몽하였다. 그들은 천불의 영험을 신비로이 여겨 대둔사로 천불을 돌려보냈으며, 그곳에 왔던 옥불상들 밑바닥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전한다.

천불은 19세기 불상으로 모두 불신(佛身)에 회칠로 장엄되어 있으며, 일률적인 자세로 신체에 비해 상호가 큼직한 모습이다.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아한 모습이며, 귀를 특히 크게 표현하였다. 나발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모두 표현된 소형불상과 중앙계주가 큼직히 솟은 중형불상으로 구분된다.

불상은 높이 25㎝ 안팎의 소형불상이며, 중앙 목조삼존상 뒤쪽으로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조 석가여래삼존상이 천불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천불전에 봉안된 옥불상은 근래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경상도 불자들의 꿈속에 현몽하여 ‘가사를 입혀 달라’는 요구에 따라 4년마다 한번씩 가사를 입히고 있으며, 갈아입은 헌 가사를 지니고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고 전해진다.

  • 천불전 외경
  • 천불전 편액
  • 천불전 천불상
  • 천불전 벽화
  • 천불전 천불상
  • 천불전 천불상
  • 천불전 천정모습
  • 천불전 삼불상

대광명전

대광명전은 헌종 7년(1841)에 초의선사가 건립한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갖는 익공양식으로 매우 단아한 건물이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한 기단상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 원주를 세웠으며, 가구는 5량구조로 되어 있다. 공포는 행공첨차가 외목도리의 장설을 받고 있는 주심포계의 익공형식으로 익공의 형상은 기둥머리로부터 둥근 판형으로 되어 있고 그 단부에는 복잡하게 조각된 쇠서 2개를 내었다.

건물 정면의 창호는 어간에는 3짝, 양 협간에는 2짝의 빗살창을 달았다. 천장은 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그 외에는 판자를 댄 빗천장으로 되어 있다. 법당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천장의 반자 단청문양과 공포 사이에 예스러운 벽화들이 은은한 고풍을 보여주고 있다. 본 전각에 특히 주목되어지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중앙부분이 위로 굽은 동형의 대들보 2개로 그 형상이 몹시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이하다.

여기 대광명전 일원에서 초의선사가 머물면서 다선 일매의 선생활을 하며 쇠미해 가던 대흥사를 다시 한번 중흥케 하였다고 전한다.
보수과정중 1841년초에 초의스님이 짓고 단청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당시 전라수군절도사였던 추사의 제자 위당 신관호와 소치 허유가 초의스님과 합심하여 당시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추사 김정희의 방면과 축수를 위해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 대광명전 외경
  • 대광명전 편액
  • 성보박물관 외경

표충사(表忠祠)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와 함께 1788년 7월 정조대왕명으로 건립한 사당으로서 사찰에서 보기 드문 솟을삼문을 갖추었다. 불교이 가치와 호국정신 및 유교를 융합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액사우(賜額寺宇)로서,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1669년(현종 10)에 건립되었다.
표충사 일곽의 풍제문인 내삼문 정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건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한다.

건물 외부는 자연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전면에 2분합의 띠살문을 단장하였으며, 측면과 배면은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어칸 상부에는 1789년(정조 13)에 정조대왕이 하사한 ‘표충사(表忠祠)’ 편액과 ‘어서각(御書閣)’이란 편액 두 기가 있으며, 단조로운 채색의 단청으로 사당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특히 표충사 사액(賜額)은 1788년 천묵(天?)ㆍ계홍(戒洪) 스님이 서산과 유정ㆍ처영의 영정을 모실 사우의 건립을 모색하면서, 당시 호조판서 서유린(徐有隣, 1738~·802)이 서산대사의 사적과 사우건립의 정당성을 왕에게 주청하여 건립허가와 함께 ‘표충사’이라는 사액을 받게 된 것이다.

건물은 전반적으로 조선후기의 건축기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활동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ㆍ처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들어 불가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도량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가(儒家) 형식의 사당을 꾸며 매년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드는 제례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대흥사 표충사 향례'는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치르는 제향의식으로 1789년 4월 27일(정조 13)부터 거행되어 왔다. 국가에서 제관을 파견하여 제를 올리는 국가의례로 조선시대의 사액 제문, 향례 홀기, 제향 관련 국왕친필 교서 등 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전통불교 유산과 전통유교의례의 습합유산이라는 역사적 전통을 현재에도 이어나가는 중요한 의례이다.

  • 예제문
  • 표충사 외경
  • 표충사 편액
  • 표충사 내부
  • 표충비각
  • 어서각 편액

부도전

부도전은 일주문을 막 지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나지막한 담장 안에 다양한 모습을 갖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가 모두 80여기(부도 54기와 탑비 27기 )에 이르고 있다. 부도의 배치는 일정한 간격을 두지 않고 3~4열을 이루고 있어 무질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질서 속에서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이다.

부도와 탑비의 주인공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 대흥사를 중흥시키고 크게 빛낸 스님들로서,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풍담(楓潭)ㆍ취여(醉如)ㆍ월저(月渚)ㆍ설암(雪巖)ㆍ환성(喚惺)ㆍ호암(虎巖)ㆍ설봉(雪峯)ㆍ연담(蓮潭)ㆍ초의(草衣) 등의 대종사와, 만화(萬化)ㆍ연해(燕海)ㆍ영파(影波)ㆍ운담(雲潭)ㆍ벽담(碧潭)ㆍ완호(琓虎) 등의 대강사, 그밖에 고승대덕들의 부도이다.

부도와 비의 주인공들이 조선 중기 이후의 인물들인 만큼 부도와 비의 양식 또한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작품들처럼 세련되고 섬세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정성을 들여 기품 있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 팔각원당형의 서산대사 부도(西山大師浮屠)는 기단부와 상륜부의 독특한 장식과 옥개의 낙수면, 처마의 목조건물 모각은 이 시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수법으로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된 서산대사 부도가 위치하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우뚝 솟아 있는 사적비는 그 크기와 규모만큼이나 당시 대흥사의 위상을 나타내어 주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17세기 말에서 19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이다. 숭상(崇尙)하는 세력과 절 분위기가 일치한 때문이다.

  • 부도전 외경
  • 부도전 편액
  • 부도전 내부
  • 표충비각
  • 어서각 편액

기타

천년고찰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관
유네스코와 함께 하는 두륜산도립공원
그누보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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