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동숲길
장춘동 천년숲길
구림리(九林里) 장춘동(長春洞)
"아홉 굽이 숲길이라서 구림리요, 봄이 오래 머문다고 해서 장춘동(長春洞)이다!"
장춘동 천년숲길은 해남두륜산도립공원 초입(대둔사 일주문)부터 대흥사까지 약 3Km의 거리에 있는 길로써, 아홉굽이 숲길로 이루어졌으며 각 각의 숲길은 단풍나무, 벗나무, 소나무, 삼나무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대륜산에는 2개의 일주문이 있는데 그 첫번째 일주문으로 대흥사의 옛이름인 "두륜산 대둔사"로 표기가 되어 있다.
2개의 일주문중 첫번째 일주문에는 "대둔사"로 두번째 일주문에는 "대흥사"로 현판이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1권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두륜산의 원래 이름은 '한듬'이었다.
국토 남단에 불쑥 솟은 그 형상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것을 한자어와 섞어서 '대듬'이라고 부르더니 나중엔 대둔산(大屯山)이라 불리게 됐고,
'한듬절'은 '대듬절'에서 '대둔사'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중 또 유식한 자가 나타나서 대둔산은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여기서 다시 뻗은 태백산 줄기의 끝이라는 뜻에서 백두산과 곤륜산에서 한 자씩 따서 '두륜산(頭崙山)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일제 때 전국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崙'자를 '輪(바퀴 륜)'으로 바꾸어 두륜산(頭輪山)이라고 하고 대둔사는 대흥사로 바꾸어 놓았으니 이제 와서 두륜산 대흥사라는 명칭 속에서 '한듬절'의 이미지는 되살릴 길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즉, 원래는 "대둔사"였으나 일제시대 때 강제로 "대흥사"로 바뀌었다는 것.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 일주문을 통과하는 차로와 오른쪽 산책로로 길이 갈라지게 된다. 많은 탐방객들이 오른쪽 산책로로 시작을 하지만 차로로도 괜찮은 탐방이 가능하다. 차로로 올라가면 단풍나무와 벗나무 등 터널 숲을 이루고 있으며 숲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파란 하늘은 터널 숲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올라가는 중간 중간 계곡을 이어주는 다리들이 있으며 총 9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다리 밑으로는 정상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시원한 계곡물들을 볼 수 있으며, 탐방객들에게 청량함을 선물한다.
한참을 올가가다 보면 (구)주차장을 만나게 되고, 약간의 여유를 즐긴 후 재차 올라가면 옛날 신도나 수행객들의 객사로 쓰였던 '유선관'을 만나게 되는데 유선관은 50여년전부터 여관업을 시작해서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 천년학등 임권택 감독의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며 최근에 예능프로 1박2일에 나오며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다. 유선관을 지나면 바로 '피안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 다리를 지나면 "극락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혼란과 갈등의 세속에서 고요와 평정의 열반으로 들어간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더욱 차분해 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피안교를 지나면 바로 2번째 일주문(금강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처음 이야기 했던 "두륜산대흥사" 일주문이다. 이 곳 일주문을 지나면 대둔사 부도밭을 지나게 된다. 이 부도밭의 낮은 담장 안으로 서산대사의 부도를 비롯하여 역대 종사와 강사의 부도 50여기가 부도비가 밀집되어 있다.
이 곳 두륜산에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선조 37년(1604년) 겨울 어느 날, 청허당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그리고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청영스님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부탁했다. 불가에서 가사와 발우를 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법을 전하는 것을 뜻한다. 왜 그런 외진 곳을 택하였는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서산대사는 그 곳이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宗通)이 돌아갈 곳' 이라고 말했다.]
부도전을 지나면 바로 해탈문을 만나게 되는데 대흥사 해탈문에는 사천왕 대신 보현보살과 문수동자의 모습만 있다. 보현의 행과 문수의 지혜는 삼신불인 법신 보신 화신의 교화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곧바로 교외별전 직지인심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사천왕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상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와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